우산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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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와 우리 경제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와 제조업 중심의 산업 형태, 강력한 문화경쟁력 등 많은 장점을 공유한다. 일본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경제선진국에 도달했지만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문제가 심화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고민을 안게 됐다는 점도 똑같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출간한 '일본경제 대전환'은 일본 경제가 다시 우리를 앞지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와 똑같은 특징을 지녔지만 정부 주도의 선제적인 경제 정책과 기업의 공격적인 재편, 증시 활황 등을 무기로 침체의 늪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슈퍼 엔저 현상'이나 가계·기업의 기대인플레이션 동반상승 등 시기적 호재가 겹치면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책은 시종일관 우리 경제를 향해 날카로운 진단을 던진다. 출산율도 일본보다 빠르게 하락하는데다 금융, 부동산, 제조업 등 여러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쓴소리도 내놓는다. 일본은 금융과 부동산시장을 개혁해 '밸류업'(가치 증진)을 우선추진했고, 단기적 외형 성장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계획을 세워 자본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보는 북미 지역 단체 ‘성난 할머니들’의 데모는 늘 흥겹다. 나이 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롱하듯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파시즘에 반대하는 패션 리더들’이라는 손팻말을 흔들며 거리에 나선다.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며 트럼프 대통령에 저항하는 ‘노 킹스 데이’에 참여하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라크전쟁 때인 2005년에는 ‘우리가 이라크에 갈 테니 젊은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하며 입대를 시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할머니들은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존재가 된 듯하다. 2024년 유럽인권재판소가 기후변화에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기념비적 판결을 낸 것도 스위스의 ‘기후 보호를 위한 노인 여성’ 회원들이 소송을 낸 결과다. 핀란드에서는 은퇴한 여성들이 손주들로부터 “할머니, 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싶지 않다며 ‘활동가 할머니’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2019년 12명이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수천명의 회원이 있는 커뮤니티로 성장했고 청년과 연대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펼친다. 오늘날의 굳세고 위엄스러운 할머니들은 수십년간 축적한 삶의 기술과 인내심, 유대감을 바탕으로 약자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나선다.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한 처방전은 우리나라에게 뼈아프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하려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은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연금제도 개혁과 고용 연장, 치매 대책까지 세워 차근차근 대비해 왔다. 우리나라의 금융회사들도 고령자 시대에 발맞춰 실정에 맞는 신탁상품과 상속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가 깊다.
폭넓은 인용과 그래프, 정확한 분석을 통해 일본 경제를 진단하고 있어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기 쉽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대조해 가며 현황을 정리해 놓아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저출산이나 직장 내 이야기를 다룬 대목도 재미있다.
일본의 사례 분석은 상세하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부족하다. 일본의 어떤 부분을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하는지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점, 우리나라의 강점 등에 read more 대한 설명도 미흡한 느낌을 준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2012년 설립된 우리금융그룹의 싱크탱크다. 거시경제나 금융산업 및 시장 분석, 경제·금융·경영 전반에 대한 심층 연구로 우리금융그룹의 성장과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에게도 ‘밀양 할매’가 있다. 국문학자 김영희가 쓴 ‘전기, 밀양-서울’은 2014년부터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의 구술 인터뷰와 현지 조사를 통해 이 운동의 의미를 짚은 책이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탈핵 이슈를 주요 의제로 제기한 이 운동의 시작 단계에선 “지역의 권위 있는 남성들”이 전면에 섰지만, 끝까지 그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싸움의 현장에 남은 이들은 ‘밀양 할매’들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밀양 할매’를 “귀엽고 순박한 이미지의 할머니가 아니라 탈송전탑 탈핵 운동가이자 에너지 정의를 실천하는 활동가를 부르는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책에는 송전탑 건설 과정의 폭력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처참해진다.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에 대한 설명, 보상금 및 합의금 지급의 정확한 기준과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민들이 알아야 할 주요 정보는 모두 소문으로 떠돌았다. 돈을 앞세워 주민들을 이간질하고 인간적 자존감을 공격하는 폭력 앞에서 수십년간 이어져온 마을의 전통과 공동체의 가치는 속수무책으로 일그러졌다.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일은 가까웠던 사람과 척지는 일일 텐데, 주민들은 이웃 관계의 파탄으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이 책에는 ‘나랏일’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국가폭력과 한국전력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이 빼곡하지만, 그럴수록 폭력이 휩쓸어버린 폐허에서 삶을 가꾸는 ‘밀양 할매’들의 모습이 더욱 반짝거렸다.